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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카 서사 정리

@ muksunim 님 커미션

Stay alive

스에미츠 레이 (남트레이너) X 나카야마 페스타

 

 

*주의사항: 나카야마 페스타 육성 스토리 스포일러, 억압된 가정, 반기독교적 서술, 교통사고, 가족의 죽음, 캐릭터의 죽음을 바라는 태도, 상해, 살인마, 살해 위협,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을 찌름, 실족, 인물들간의 심각한 갈등에 대해 다루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빈번히 등장함...

 

 

스에미츠 레이 프로필 (읽고 오시면 개인 특징 및 서사에 대한 이해가 편합니다) - https://www.evernote.com/shard/s384/sh/d4029da2-54dd-2514-6e7d-2096a85bde40/e3ebb3774ba5affb7f3ca1be28bc326b

 

 

스에미츠 레이 (末光 零)

백금을 녹여내 실로 뽑아낸 것 같은 머리카락에, 살며시 아래로 내려간 온화한 눈매를 가진 부드러운 미남. 바람에 결이 얇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그 사이로 내비치는 미소는 옅으면서 어딘가

www.evernote.com

 

이 외부링크 프로필에 서사 요약본이 있으니 그것만 읽어봐주셔도 됩니다!! 이 뒷내용은 위 프로필에 쓰인 서사를 좀 더 인물간의 감정선에 집중해 길게 풀어낸 버전이에요. 

 


 

BGM- https://youtu.be/UFQEttrn6CQ

 

 

 

 

 

[나카야마 페스타와의 만남]

@ 편자님 커미션

 

"네가 내 마음에 다시 불을 붙였어. 타오를 정도로 살아, 살아... 끝까지 달려가자." -나카야마 페스타의 홈화면 대사

 

기회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는 레이스에 즐거움을 잃어가던 페스타에게, 일부러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아슬아슬한 도박을 레이가 제안해 한 배에 타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둘은 첫만남부터 레이 (트레이너)가 죽을 뻔 한 걸로 시작한다. 사건을 정리하자면, 뒷골목에서 불량배들에게 원한을 산 페스타가 그들에게 둘러싸여 위협받는 걸 레이가 우연히 목격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레이는 자기 학원의 학생이기도 한 그녀와 불량배 사이를 가로막으며 싸움은 안 된다고 하지만, 불량배는 비킬 기색도 하지 않고... 어쩌다 그녀 대신 치킨 게임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까지 쭉 달려가면서, 먼저 브레이크를 건 쪽이 패배)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페스타는 어차피 나는 네가 오늘 처음 본 우마무스메고, 이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다며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레이는 딱히 목숨이 아깝지도 않고 '위협당하는 사람을 그냥 방치하는 건 옳지 않으니까' 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거절한다. 그러자 페스타는 가끔 너처럼 사람 좋은 바보가 있다고 말하며, 겁먹지 말고 브레이크를 걸지 말고 끝까지 밟으라고 간을 배밖으로 홀랑 빼먹은 것 같은 조언을 해준다. 그 무식하리만치 겁을 상실한 조언을... 레이는 받아들였다. 그는 앞만 바라보고 계속해 엑셀을 밟고, 결국 절체절명의 순간 불량배 리더가 먼저 브레이크를 밟는다. (...) 승리했나 싶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레이는 반동으로 몸이 튕겨져 나가며 바다에 떨어질 뻔하고... 페스타가 순간적으로 엄청난 달리기와 도약력을 선보이며 그를 간신히 잡아채 목숨을 구한다. 그 달리기에 매료되어 (자기가 죽을 뻔 한 것도 잊고...) 이름을 물어보는 레이에게 페스타는 대답해주지 않고 그저 손을 흔들고 저벅저벅 떠나는 것이 둘의 첫만남. 그 때 페스타는 "심장이 시끄러워..." 하고 중얼거렸는데, 레이는 그런 감각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어 궁금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엄청난 달리기가 인상이 남았기에, 레이는 트레센 학원 내에서 모의 레이스를 하는 그녀에게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 외로 부진하며 꼴지에 가까운 성적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되짚어보자면, 트레센 학원에 입학한 페스타가 마냥 레이스에 재미를 붙이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기껏 은사님에 의해 레이스로 인해 심장이 뛴다는 감각을 알았건만, 학원에서는 레이스에 져도 '다음 경기가 있다'는 생각 탓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선생님들에게 "제대로 달려라." 라고 혼만 나며 정학 직전까지 몰리게 된다. 기껏 은사님이 '살아가게' 해줬음에도 그녀는 다시 '타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레이가 목격한 것.

 

 레이는 그만한 달리기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발휘하지 못하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고, 이에 따라 불량배 리더에게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면서 페스타의 정보를 캐내려 한다 (...간이 배밖으로 부었음 목숨 두 개냐고 진짜.) 결국 그녀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까지 만나고, 그녀가 엄청난 실력을 발휘한 레이스 비디오를 보게 되면서 페스타는 '벼랑 끝에 몰려 단 한 번의 선택이 삶을 좌우하는 아슬아슬한 승부' 속에서 비로소 뜨겁게 타오르며 '살아간다'는 감각을 느낀다는 것을 눈치챈다. 살아간다는 것. 본인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레이는 약간의 궁금증이 더해져 더더욱 그녀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이를 다시 한 번 불어넣어주고 싶다고. 자신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그녀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자신이 도와주고 싶다고. 첫 계기는 그토록 단순하고 옅은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미 스에미츠 레이는 그 강렬한 생의 반짝임에 이끌린 걸지도 모른다. (본인은 평소처럼 그게 '옳으니까' '선한 행동이니까'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첫 시점부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

 

 따라서 그는 밤중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페스타를 기다리다가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살려보겠다고. 그러면서 그는 개선문상에서 지금까지 중 가장 나은 성적 (2착)을 낸 실력자 우마무스메의 공개적인 복귀 기자회견에 난입할 것을 제안한다. 거기에서 이제 그 레이스에서 1착을 하는 것은 우리라며 공개적으로 도발하고 선전포고를 하자고 말한 것. 그렇게 한다면 데뷔전부터 언론들이 주목하게 될 것이고,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낸다면 바로 질타를 받으며 매장... ... 이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단 한 번뿐인 아슬아슬한 레이스를 즐길 수 있지 않겠냐는 것. 말이야 쉬운데, 한마디로 손흥민이 복귀한다는 기자회견에 공식 경기도 뛰어본 적 없는 무명의 축구 선수가 난입해서 내가 니도 못한 월드컵 금메달 딸테니까 나랑 축구대결 ㄱㄱ 라고 수많은 기자와 언론 앞에서 도발하자는 (...) 소리다. 까딱하면 선수도 트레이너도 양측 다 세상에 매장되는, 머리에 나사 하나 빠진 놈들이나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지만... ...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게 맞았나보다. 그리고 이들은 나사도 브레이크도 없었다.

 

 정말로 기자회견에 난입해 도발하고, 선수와의 레이스에서 전력을 발휘한 페스타는 비록 패배하지만 유의미한 승부를 펼치고, 모든 언론들이 그녀를 주목해 안 좋은 성적을 내면 그대로 매장당하는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전력을 발휘해 짜릿한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거라 직감한다. 그와 함께한 레이는 그러면 정식으로 트레이너 계약을 해주겠느냐고 묻고 페스타는 이에 응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하... 이미 한 배를 탄 사인데 이제 와서 형식 차리기야?"
 
"해. 네가, 내 트레이너를. 그리고..."
 
"-마음껏, 나를 살려봐."
 
 

 

[레이 시점의 육성 스토리] 

 

@ H3R3_C 님 커미션

 

"내가 그랬다면, 너도 나를 살게 만들었어. 지금껏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러니 네가 바라는 대로, 네게 모든 걸 걸어볼게. 신이 아닌 너라는 희망에게."

-육성 스토리 中 레이의 (창작) 대사

 

희망이라는 이름의 도박을 걸며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페스타와, 그런 페스타와 함께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레이의 이야기. 타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치 않았던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에 스며드는 과정.

 

 

 

 그렇게 주목을 받으며 데뷔를 하고 나름 성적도 잘 내며 목표인 개선문상을 준비하며, 페스타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으로부터 희망에 관한 덕담도 듣고 자신이 세계를 붙잡았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맹세한다. 

 

(스크립트 中)
페스타: ...트윙클 시리즈는,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워서. 달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동도 맥박도, 온몸이 외치기 시작하거든 ㅡ '살아있다'고 말야. 
은사님: 후훗, 그럼 트레이너 씨에게 좀 더 살아있게 해 달라고 조르렴. 분명 '희망은 사람을 살아있게' 하니까. 
페: ......희망?
은사님: 그래, 내 눈에는, 두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생기가 넘쳐 보여. 앞으로도 어떤 고난이 생긴다해도, 두 사람의 눈동자는 흐려지지 않을 거야. 그건 분명 두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지금은 '개선문상'에서 이기는 건 힘들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두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아주 잔뜩 살아가는 거야, 페스타. 네 트레이너 씨와 함께. 너의 세계에서. 
페: .........그래, 선생님한테도 보여줄게. 우리가 살아낸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언젠가, 세계를 붙잡았을 때의 나도 말야ㅡ
 
 

 그러나 행복한 시기도 잠시. 악재는 클래식 시기에 일어난다. 안 그래도 건강이 안 좋아 입원해있던 페스타의 은사님이 1년도 못 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남은 시간을 유의미하게 쓰는데 집중하며 이별을 준비하려는 은사님과 달리, 페스타는 은사님을 포기하지 못한다. 레이는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상기하며 페스타에게 '하고 싶은 내기가 있으면 말해달라. 무엇이든 함께 하겠다.' 고 말하고, 그에 결심한 페스타는 은사님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실적으로는 별 볼 일 없었던 내가 클래식 삼관 노선 (*레이스 노선)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고 일본 최초로 개선문상 우승까지 따낼테니 그를 보고 싶으면 살아달라고. 보고 싶어지게 만들어주겠다고. 그녀는 '선생님에게 역으로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레이스에서 성적을 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성적을 내는 과정 속에서도 페스타와 레이는 많은 일상을 함께 한다. 가족들이랑 갈 사전답사 용도로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자극이 없어 무료하다는 페스타를 달래기 위해 수족관도 가고, 다친 길고양이도 같이 잡고, 식당도 가고 인형뽑기나 신사도 가고... (이게 트레이넌지 썸남인지...) 그러는 과정을 통해 페스타는 점점 레이를 내 옆에 있을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를 직접적으로 레이를 데리고 뒷골목의 식당에 가면서 "여기는 호랑이굴이니 마음을 방심하지 말고 갈고 닦아놔라. ... 앞으로도 내 옆에 있으려면." 라고 말하며 표현한다. 독고다이인 우마무스메가 옆에서 계속 함께 할 '아이보 (파트너)' 라고 인정해준 것.  

 

 레이 역시 심경의 변화는 점점 일어나고 있었다. 몰랐던 스릴과 향락의 세계로 페스타가 자신을 인도하며, 어쩐지 점점... 오랫동안 멈춰있던 심장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 그는 자신에게 없는 생생한 삶의 감각을 지닌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리지만, 아직 이 이유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다. 어렴풋이 목숨을 거는 아슬아슬함도 나쁘지 않다고 느낄 뿐. 그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방식에 이끌렸다. 종래엔 그녀를 위협하는 불량배의 앞을 가로막고 간이 배밖에 나온 것처럼 '때려보라' 라고 하는 도박을 걸고 (진짜로 때리진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게 통했을 땐 흥분해서 만면에 활짝 미소 짓는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극적인 감정과 전율은 명백하게 이상했지만, 레이는 페스타의 레이스가 먼저라며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 즈음, 페스타 이외의 다른 영웅 같은 우마무스메가 등장해 주목을 전부 빼앗기고, 그 우마무스메가 개선문상을 회피한다는 결정을 내려 일본 전체가 좌절하게 된다. 세계(국제 레이스)로 가는 희망이 끊겼다면서. 페스타는 그에 좌절하지 않고 "이것은 헛된 발버둥이 아니라 기적을 위한 준비다." 라고 말하며 클래식 3관의 마지막인 국화상에서 성적을 낸다. 하지만... ... 그래도 은사님의 몸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었고, 중간에 간호사들이 몰려올 정도로 죽기 직전의 위급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감이 온 페스타는 자신은 결국 아무것도 못 했고 레이스에서 뛰는 걸론 선생의 건강에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한정된 시간 속에서 뭘 하고 있었냐며 좌절한다. 이에 레이는 평소 가지던 신념인 "죽음이 곧 해방이다." 같은 말은 나오지도 않았고, 좌절한 페스타를 보며 오히려 땅바닥이 꺼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낀다. 그녀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눈치챘을 땐 이미 진심으로 소중해져 버린 것.

 

 페스타는 은사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바보같을지도 모르지만 난 포기할 수 없다 등)와 친구와 있었던 일을 편지로 써서 남기고 경기에 출주했는데... 여기서 한 가지 기적이 일어난다. 원래 역사(*고증된 실제 역사)대로면 페스타의 선생은 12월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었겠지만, 페스타가 세계에 도전하는 걸 보여주겠다며 희망을 가지게 하겠다는 도박이 결국 성공한 것. 은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수술 받는 걸 국화상 이후 선택했었다. 

 

 케이세이배 레이스가 끝나고 이를 안 페스타는 울 듯한 눈으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은사님을 끌어안는다. 약속했던 대로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 (개선문상 우승)도 보여주겠다고 맹세하면서. 다가오는 죽음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반짝이는 ‘삶’을 손에 넣으려는 자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 그들을 눈앞에서 쭉 지켜본 레이는 크게 동요한다. 분명 삶은 고통이고 죽음이 구원일텐데, 어느새 자신의 선을 훌쩍 넘어서 들어온 저 사람이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페스타를 보고 있으면 꼭 살아있는 쪽에 희망이 있는 것 같아서. 결국 레이는 페스타에게 묻는다. 어째서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살아있으려' 할 수 있는 거냐고.

 

 그 말을 들은 페스타는 지금까지의 그의 태도로부터 느껴졌던 희미한 위화감과 ‘자신이라 알 수 있는 감’에 의존하여 직감한다. 트레이너 또한 살아있는 데에 딱히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자신과 지금껏 목숨을 건 무모한 짓도 한 것이라고.

 

 “시체처럼 살긴 한 번뿐인 삶이 아깝잖아. ...하핫,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구만.

 

 네가 무엇에 그렇게 압박받고 있는지, 뭘 그렇게 피하고 싶어하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욕심 정도야 마음껏 부려도 된다고. 원하는 걸 움켜쥐려는 그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나는 도박을 걸어왔어. 어떤 사람들은 그를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너는, 나의 희망을 부정할 셈이야?”

 

 부정하지 못할 걸 알면서 하는 말이다, 저건. 그를 증명하듯 페스타는 비뚜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믿던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바꾸라고 하는 말에, 함부로 긍정도 부정도 못하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씀은...” 하고 말하려는 레이에게 그녀는 쐐기를 박는다.

 

 “네가 믿는 그 잘난 신이라는 녀석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면, 나는 그걸 부정하겠어. 신은 내세엔 널 구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여기서 널 살릴 수 있는 건 나야.”

 

 “...너는 신도 내가 믿어왔던 것도 전부 부정할 셈이야?”

 

 “그래. 그게 너를 살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네가 내 새로운 신이라도 되어줄 거야?”

 

 조금은 매달리는 듯이 한 질문을 페스타는 단박에 부정한다.

 

 “아니. 나는 나카야마 페스타, 그 뿐이야. 누군가의 절대적인 이상은 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어.”

 

 “그래도 감히 말하지. 너와 함께 나아가는 건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신이 아닌 내게 걸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살아있게' 해줄테니까.”

 

 이번엔 자신이 그를 살아있게 해줄 차례임을 직감하며 말한 페스타지만, 레이의 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페스타도 당장 대답을 들려달라는 이야기는 아니라며, 우리에겐 더 중요한 문제들도 많으니 좀 더 생각해보라며 등을 돌린다. 그렇게 이 제안에 대한 답은 한 차례 미뤄진다.

 

 

 

 

 그 후, 발렌타인 때 악몽을 꿔서 기운이 없는 페스타를 보곤 레이는 어느새 그 하나에 전전긍긍하며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페스타를 아주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 그녀가 좌절한다면 자신도 크게 상처입을 것이라는 것, 언제나 지탱해주고 싶다는 것, 그런 감정을 느끼며 이미 페스타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이것은 격렬한 감정이고 자신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나쁜 기분이 아니라서... ...

 

 둘은 최종 목표인 개선문상을 향해 준비해나간다. 은사님이 일차적으로는 살아났다고 하나, 몸상태는 언제 다시 악화되거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불안한 상태였기에 둘은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다소 불안한 감이 있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올해 안에 개선문상에 출주하려고 준비하던 중... ... 특훈을 도와주던 엘이 돌발적인 폭탄을 터트린다. 현재의 페스타로는 개선문상에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니 더 단련해 내년에 가는 것을 제안한 것. 

 

 당연히 페스타는 선생의 목숨이 지금은 살아있어도 언제 또 약해질지 모른다며 화내지만, 엘의 말대로 지금 간다면 승리할 확률은 희박했으며 패배한다면 그 또한 무의미했다. 엘은 자리에서 비키고 레이와 페스타 둘이서 이야기하게 된다. 레이는 "내년에 간다고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이번에 개선문에 갔을 때 진다면, 어쩔 수 없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은 다 했다라고 은사님을 핑계로 삼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며 페스타에게 이야기하며 "나는 이걸 우리가 선택한 내기였다고 하고 싶어."라며 설득한다. 가식 하나 없는 진심으로, 그는 어느새 페스타의 내기에 함께 하며 그녀가 우승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페스타가 그건 역시 너무 승산이 희박한 내기니, 내가 지금 간다고 택하면 어쩔 거냐고 묻고... 레이는 그에 저번에 미뤘던 대답까지 함께 돌려준다. "그것이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지옥으로 가는 외길이라고 하더라도 따라갈게."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그가 줄곧 바라왔던 구원도 천국도 포기하고 지금 이 순간, 이 ‘삶’을 페스타와 함께 하겠다는. 신이 아니라 너를 선택해서, 이 땅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었다.

 

 결국 그 필사적인 결심과 선생님의 자신의 목숨까지 배팅해보라는 설득에 힘입어, 페스타는 둘을 정말 바보라고 생각하며 개선문상을 미루고 선생님의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게 된다.  "내년에 몸을 완성해서 선생도 죽지 않고 개선문에 나가서 이긴다." 라는. 그리고, 이 과정에서 페스타는 강적들을 차례로 이겨가고 개선문상 출주를 선언하며, 아무리 당신(일본의 국민)들이 좌절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마지막 강적(엘)과의 결전을 앞두고, 그녀는 은사님의 병실을 방문한다. 자고 있는 선생님을 향해 전에 그녀가 이야기 한 '희망' 이라는 말을 되돌려주면서. 

 

 

"...있잖아, 선생님. 나는 그렇게 생각해. 갬블이라는 건 선택. 단 하나의 선택이 인생을 결정지어버리지. 그 순간에 손바닥은, 기분 나쁠 정도로 땀으로 흠뻑 젖어있겠지. 조급해하고, 당혹해하고, 헤매이면서. 그리고 나는 ㅡ 최악이자 최고의 기분을 맞이하는 거야."

 

"...그러니까 살아. 지켜보라고.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당신의 희망은 무너지지 않아."

 

그녀의 '도박'은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 그 자체였다.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해 뒷골목을 전전하던 소녀는, 은사님과 트레이너 두 사람에 의해 살아있게 되고, 결국 일본 전체에 새벽을 몰고 올 파란이 된다.

 


 

 그리고 이건 그 대결에 비하면 사소한, 레이스 실력 강화를 위한 여름 합숙 때의 이야기다. 연습은 문제없이 진행되어 가지만, 레이는 페스타와 함께 있을 때 주어지는 짜릿한 자극이 사라지고 있어 어느덧 무자각으로 허전함을 느낀다. 레이조차 깨닫지 못한 사실을 페스타는 그의 표정만 보고서 바로 깨닫고, 따라오라며 인적이 드물고 관리되지 않은 산으로 그를 이끈다. 레이는 명백히 위험하니 그녀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가자." 라고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썩어빠져서 잘못하면 바로 추락해버리는 다리를 건너거나 절벽을 오르는 등, 건너편에 있는 바다를 보기 위해 비상식적인 일들을 한다. 결국 밤이 깊어져 둘은 산에 나온 곰에게 쫒기게 되는데... ... 페스타는 목숨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짜릿하게 전율하며 유쾌하게 웃어제치고, 레이 역시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실제 인게임 트레이너 대사 中)
달린다. 도망친다. 맹수의 거친 숨소리와 땅을 울리는 발걸음. 기척이 다가온다. 죽음의 갈림길에 뇌가 화끈거려 녹아내릴 것 같아서- 
-(그래, 이거야, 이 느낌이야...!!)
 

 결국 곰에게서 도망치는 '승부'에서도 성공하고, 그 보상으로 주어진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바라보며 레이는 자신이 흥분하고 전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전 불량배들과의 '내기'에서 성공했을 때, 쇼윈도에 비췄던 자신의 얼굴도 다시 떠올랐다. 느껴졌던 스릴감에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행복에 가득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금도 그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다. 서로가 동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짜릿할 정도의 도박에 자신의 패를 걸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 그 일순의 반짝임을 위해 엄청난 바보가 되는 사람들. 그것이 두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동류였는지, 동류가 되어버린 건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레이는 그제서야 완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후련함과 기쁨에 차오른다. 생경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페스타는 결국 자신을 살게 만들어주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꿨다. 이제 더는 이 욕망도 감정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독실한 기독교 남성이 욕망의 과실을 삼키고 자신이 페스타와 한 통속인, 동류의 인간이었다는 걸 깨닫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그 엘 (이전 개선문상에서 2착이라는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우마무스메)과의 결전까지 이기고, 페스타는 세계로 나아가는 일본 전체의 희망이 된다. 그런 나캬아마 페스타를 보며 레이는 생각한다. 너는 나의 희망이기도 하다고. 나를 바꿨고, 나를 살게 만든, 꺼지지 않을 불씨이자 내 삶의 이유이고 전부라고. 

 

 이 뒤 온천여행을 함께 가며 페스타와 레이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바다에 같이 뛰어들게 되더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그대로 페스타는 개선문상에 우승하고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되고, 훈련을 계속하는 나카야마 페스타는 이따금 레이에게 장난스럽게 "너랑 나는 지옥까지 함께 갈 사이잖냐." 라는 투로 이야기 하곤 한다. 그에 레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어느샌가 완전히 그녀에게 올인(All-in)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게임 내 육성스토리는 이것으로 끝. 

 

 

 

[내기로 시작된 연애]

@ nzpNngpW 님 커미션

 

 육성 스토리로부터 약 1년 뒤, 페스타는 점점 자신에게 미묘한 감정이 생겨가는 것을 자각한다. ‘이 녀석을 보면 느끼는 감정은 은사를 보면 느끼는 것과 비슷한데, 무언가가 다르다.’ 정확히 무언가가 다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의식한 것은 동료 우마무스메에게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스타랑 트레이너는 사귀는 사이야?” “허?” 하고 어이없어서 되묻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는 말했다. “그치만 맨날 찰싹 붙어다니잖아? 얼마 전에도 같이 수족관 다녀왔다며.” “그건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고.” 간결한 대답에 동료는 굴하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 “진짜~? 같이 있어도 아무 감정 안 들어? 꽤 잘생기기도 했잖아.” “아서라.”

 

 몇 번이고 그럼 아무 사이 아니라는 거지? 하고 캐묻는 동료에게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의식하게 된다고 하던가. 불현듯 평범하게 트레이너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페스타는 생각하게 된다.

 

 이 녀석이랑 나... 주변에서 보기엔 사귀는 거 같으려나.

 

 “진짜~? 같이 있어도 아무 감정 안 들어?” 다시 떠오르는 동료의 말에 페스타는 레이를 바라본다. 뭐, 잘생겼다는 건 딱히 부정은 않겠지만. 딴 사람 눈에도 그렇게 보일 정돈가? 하고 바라보면 좀 더 자세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백금빛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깊은 눈두덩이나 진한 쌍카풀, 오똑한 콧날, 트레이닝 노트를 가르키는 하얗고 긴 손가락과 자신에게 말을 걸 때만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것을 의식하고 있자니 페스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심장이 요동치는 묘한 술렁임을 느끼며 동요한다.

 

 정신을 다잡자고 마음먹고, 페스타는 평소같은 일상을 보내기로 한다. 트레이닝을 하고, 트레이너와 함께 뒷골목의 식당에 가고, 도박장에도 가보고, 동생들 선물해줄 선물도 사러 상점가도 둘러보고... ... 그러고보니 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다니잖아!

 

 의식하지 않고 있던 것들이 새삼 의식되기 시작해서 그녀는 골머리를 앓는다. 그래봤자 잠깐 이러는 거다, 이상한 말을 들어서 착각하고 동요하는 것뿐이라고 함께 자극을 찾기 위한 외출 (타인이 보기엔 영락없는 데이트)를 계속하면서도 애써 마음을 누르려 한다.

 

 

 

 하지만 발렌타인, 자신에게 계속 트레이너에게 마음이 없냐고 캐물은 동료가 레이에게 초콜렛을 수줍게 주는 것을 목격하면서 동요는 최대치로 커진다. 설마 처음부터 이러려고 물어본 건가?같은 생각까지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레이를 보면 이상한 동요가 들킬 것 같아 (마침 트레이닝이 없는 휴식일이기도 했고) 하루 종일 피하려고 했지만... ... 우연히도 주변 선생님에게 부탁 받아 그에게 자료를 건네줘야 할 일이 생긴다. 트레이너실로 들어갔더니, 문은 열려있지만 트레이너는 없어서 페스타는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기로 한다. 심란한 마음 반, 이질적인 느낌 반으로 소파에 누워있는 사이 그녀는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눈을 뜨니 노을이 뉘엿하게 지는 오후. 자신의 몸에는 트레이너의 겉옷과 따뜻한 담요가 덮어져 있었고, 눈 앞에는 차를 끓여놓은 채로 잠든 자신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레이가 있었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도 모를. 

 

 그는 페스타가 잘 자는 걸 보고 깨우고 싶지 않아졌다고 하면서, 딱 보기에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제 초콜렛을 건네준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준비된 듯한. 어느새 페스타는 기분이 완전히 널뛰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초콜렛을 먹는 것도 아깝다 느껴지며 그대로 소중히 품에 넣었을 때, 그녀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녀석을 좋아한다고.

(참고로, 동료 우마무스메는 그냥 잘생긴 사람을 보면 드는 팬심으로 레이에게 초콜렛을 줬다는 사실이 후에 밝혀졌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관찰해본 레이는 아주 묘했다.

 

 이 녀석은 자신밖에 없다. 삶이 내 위주로 돌아가고 있을 정도로, 나에게 올인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한 눈 팔 일은 없을 거다. 마음도... ...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은데. ... 그런데 이 녀석은 자신을 '그런' 상대로 바라볼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으며, 정작 중요한 부분에선 선을 긋고 절대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런 페스타의 분석은 정확했다. 레이는 이 시점에서 이미 페스타에게 완전히 반해있었으나, 연애적 사랑 이상으로 페스타가 자신의 모든 것이고 삶의 축이나 다름 없는 존재여서 로맨스 감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어느 정도는 느낀 페스타는 어필도 해보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멋들여진 대사도 쳐보지만 자각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단풍이 떨어지는 가을 어느 날, 노을이 뉘엿뉘엿 져가며 두 사람이 데이트를 끝나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을 맹목적으로 아끼면서도 그 이상의 선은 허락해주지 않는 레이의 행동에 답답함이 극에 달한 페스타는 도박을 감행하자고 결심하며 레이에게 고백한다.

 

 “네가 좋아. 트레이너로서, 라거나 선생님과 같은 의미로서, 같은 싱거운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 명백히 그 이상의 의미로, 너를 좋아하고 있어.”

 

 생각지도 못한 고백에 레이는 놀라고 당황한다. 하지만 페스타에겐 자신 같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테고, 20살이 넘은지 얼마 되지 않아 감정을 헷갈리는 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진다면 이전처럼 그녀를 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섣부른 판단으로 그녀의 삶이나 이 관계성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레이는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페스타가 먼저 말을 잇는다.

 

 “네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딱 100일이야.”

 

 “100일 동안만 나랑 사귀어. 연애놀음을 하자고. 그리고 그 사이, 네가 내게 반하지 않으면 나의 패배다. 이 경우엔 더 이상 네게 이런 생각을 품지 않고 깔끔하게 접도록 하지. 그리고 만약 반하면, 내 승리다. 이 경우엔... 글쎄. 소원권이라도 달라고 할까.”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레이에게 페스타는 승부사의 눈을 한 채로 말한다.

 

 “이건 내기야. 어린애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면, 잠깐만 어울려줘. 그 뒤에 깔끔하게 포기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 오히려 서로에게 좋은 거 아니겠어?”

 

 결국 협상 능력이 극에 달한 페스타의 끈질긴 설득 끝에 레이는 그 말에 수긍하고, 노을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 어느 가을날, 둘은 100일간의 내기식 계약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페스타는 레이에게 평소처럼 구는 듯 싶다가도, 중요한 순간 확실히 어필하며... 원래부터 무자각으로 페스타를 좋아하던 레이는 매번 이에 넘어간다. 페스타가 당기면 그대로 끌려오다 못해, 오히려 본인이 더한 짓을 하기 시작하는 레이와 페스타 두 사람이 선을 넘는 것은 금방이었다. 현재의 관계성은 사귀지 않았던 시절이 거짓말인 것처럼 빠르게 서로에게 이끌리며 함께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주변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래서 언제쯤 진짜로 사귈건데...' 정도로 생각하는 내기연애 맞짝사랑 (여캐 자각 남캐 무자각) 정도. 

 

 

 

[100일의 끝자락]

@D_commi 님 커미션

 

*기본적으로 레이나카는 이 계약연애 시점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지만, 이따금 완전히 사귀게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도 할 생각입니다. 이건 언젠가 다가올 그 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리 보고 오면 이해가 편한... 내기 연애 중 신년 축제 이벤트에서 있었던 일 (타로 요약본)- https://marinedream.postype.com/post/14105154

 

삶이 반짝이는 '한 순간'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뛰어드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미래를 모색하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바라기 시작하는 이야기. 

 

 

 

트위터 썰 복사) 사실 레이는 자기의 감정에 대해서 완전히 바보는 아님. 페스타에게 느끼는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란 걸 알고, 두근거리고, 닿고 싶어지고, 키스하고 싶어지는 이 감정을 세간에서 무엇이라 부르는지도 알고 있음. 그렇지만... 일부러 자각하지 않으려는 쪽에 가까움. 왜냐면 얜.. 속을 까고 보면 자신도 타인도 믿지 못하는 애니까. 페스타도 언젠간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더 상처받기 전에 무의식중으로 밀어내려 하는 거임. 근데 페스타는, 밀어붙여야 할 때와 지켜봐야 할 때를 너무 잘 아는 애라... 레이가 결코 두 걸음 이상 물러나지 못하도록 선을 긋고 자신의 내기판 (내기연애)으로 레이를 끌어들이고, 결국 그 결과 페스타라는 존재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마음 안에 범람하기 시작함.

 

그래서... 사실 내기연애 중후반쯤 되면... 레이도 신년 축제에 가서 자기가 페스타를 좋아한다는 걸 결국 자각했을 것 같음. 근데 자각을 해도 딱 거기까지. 사귀게 된다는 건, 언젠가 헤어짐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위험부담까지 지기엔, 너무 페스타를 잃고 싶지 않아서.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의 관계라면 영원히 이대로 있을 수 있잖아. 라고 생각함.

 

그러니까... 단적으로 무서웠던 거죠ㅋㅋ 사실 알고 있었음. 페스타는 이미 고백까지 해가며 충분히 자신의 진심을 보여줬고, 여기선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움직이기 위해선 자신을 붙드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자각 전까지는 굳이 의식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감정들 (페스타도 언젠가 떠나갈 거야, 연인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거라고 생각해?, 네가 페스타한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등등... 기타 우울해지는 많은생각)과 그에 수반되는 두려움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근데...에휴... ...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말이야 쉽지... 걍 좋아 나아가자~ 뚜벅뚜벅~ 하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얘로선 그걸 부수고 나아갈... 그 한 발자국을 디딜 용기가 부족했던 거임. 그리고 페스타는, 처음엔 분명 지금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있으니까, 네가 날 마음에 들일 날이 올 거라고 믿으니까 거기에 걸었던 내기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민하게 레이의 감정을 알아차릴 것 같음. 어쩌면 레이보다도 먼저. 그래서 이따금 '진짜 솔직하지 못하네, 너.' 같은 생각 할 것 같고...

 

이게 좀... 시간이 흐르고, 도저히 무르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고, 페스타의 마음도 깊어지면서... ... '언제쯤 솔직한 네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걸까.' 가 되는 쪽에 가까움. 이렇게 확신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건, 페스타가 무섭도록 감이 좋아서도 있지만... 레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워낙 헷갈릴 수 없을만큼 페스타를 사랑한다는 표시를 자주 보여서 그런 것도 있음. 누가봐도 명백히 자기를 사랑한다는 눈으로 바라본다거나, 페스타가 조금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맞추거나, 한다는 게...

 

그러다가 레이가 사랑을 자각했을 신년축제 무렵 페스타 역시 지금은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네가 이 내기 승부를 인정할 때까지 100일 간의 내기는 무르지 않을 거지만, 적어도 난 이 내기에서 내가 이긴 걸 알아.' 라고 말하며 이미 승부는 났고 네가 이 승부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말함. 그러면서 네 소원 (페스타와 계속 함께 있을 수 있기를)은 내가 이뤄줄테니 나한테 걸라고... 말한 쪽이었을 것 같고. 그런데 레이는 확실한 확답을 주지 않고 대답 대신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담아서 키스할뿐이라... '너는 분명히 나를 원하는데,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좀 생채기를 입었을 것 같음.

 

레이 역시도 왜 이렇게까지 페스타는 자신이란 존재를 뒤흔드는지, 참는 건 제일 자신 있는 분야니까 충분히 참을 수 있었는데도, 결국 너는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겨 이 도박에 나를 전부 걸어서 내가 침몰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을듯. 여기서부터가 위기의 시작... 단계임.

 

그리고 이 때 즈음 또 다른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아래부터는 서술체)

 

 


 

 

 연애를 한다고 해서 레이스를 안 하는 것도, 짜릿한 일들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둘에겐 당연한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페스타가 불량배에게 위협받는다거나, 다칠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렇게까지 마음 졸이게 된 건. 페스타와 함께 아슬아슬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즐거웠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선 항상 그녀가 다치게 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이것이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 이었으니까. 그저 늘 해왔던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는 그녀를 꼭 지켜내겠다고 생각할뿐.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일어났다. 한 불량배 우마무스메가 트레이너와 돌아가던 그녀를 위협한 것. 그녀는 나카야마에게 몇 번이고 승부에서 지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해 무시당한 우마무스메였으며, 나카야마가 승승장구하며 개선문까지 우승하고 레이스를 재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애먼 분노의 화살을 돌려 찾아온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엔 왠만한 위협에도 물러가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흥분하는 등 정도가 심각했다. 결국 약간의 말다툼 끝에 불량배는 나카야마를 향해 달려드는데 그 때 레이는 목격해버린다. 주머니에 꽂혀있던 칼을. 그리고 다시는 다리 못 쓰게 만들어주겠다는 협박까지 들려왔다. 허풍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저 칼을 쓴다면? 방심한 틈에 페스타의 발목에 꽂아넣기라도 한다면?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자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다. "페스타!" 레이는 칼을 쥔 불량배의 손목을 잡는다. 그러나 칼로 적당히 위협할 생각이었던 불량배는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그를 휘두르고, 우마무스메의 완력에 저항할 수 없던 그는 부상당한다.

 

 급소는 피했으나 피가 지나치게 나온 아슬아슬한 상황. 본인도 감정에 치우쳐서 한 행동에 노리던 페스타 대신 연약한 인간이 맞자 당황한 불량배는 그대로 도망가버리고, 페스타는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그를 병원으로 이송한다. 다행히 페스타의 응급처치와 제 때 도착한 구급차로 인해 레이는 기사회생한다.

 

 페스타는 병원에서 레이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하지 않던 고민을 시작한다. 처음엔 그냥 스릴이 없는 네 얼굴이 어쩐지 허전해보여서, 너도 나랑 같은 걸 바라는 동지 같아서, 레이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둘이서 같이 스릴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목숨이 위험한 도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면 언젠가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데. 그 위험성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더 불타오르는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마음 깊은 곳에선 믿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와 이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그런 상황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 근거도 없는 생각을 가진 결과가 이렇다. 그러한 생각은 안 그래도 내기연애 관련해 생채기가 난 페스타의 심장에 다시 한 번 쓰라린 고통을 더한다.

 

 그리고 그 때 타이밍 좋게 레이가 깨어난다. 페스타는 걱정이 감춰지지 않는 표정으로 더 쉬라고, 아직 누워있으라고 말하며 입을 뗀다. 그래도 우마무들 사이에 끼어든 건 너무 무모했다고. 자칫하면 죽었을지도 모르고, 나였으면 이 정도 중상까진 안 갔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다음부턴 자중하라고 말한다.

 

 사실, 그녀도 말하면서 자기가 불량배랑 자기 사이에 트레이너를 끼어들게 하거나... (*외출 이벤트) 하는 식으로 은근히 도박을 감수하게 했던 게 생각나서 '누가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원.' 같은 생각은 했지만.

 

 그런데 그런 생각까지 깨트릴 정도로 레이가 폭탄 발언을 해버린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유를 들어보니까 더 가관이다.

 

 네 다리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그니까... 레이는 이렇게만 말했지만 진짜 얘의 심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하잘 것 없는 내 목숨이나 존재 같은 것보다) 네 다리가 소중하니까... ...' 그리고 무섭도록 감이 좋은 편인 페스타는 레이의 말에 이런 의미가 있단 걸 바로 눈치채버린다. 

 

 이를 들킨 레이는 어차피 네가 아니라면 언제 끝나도 상관없는 목숨이라며. 아깝다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는 페스타가 전부였으니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미 소중한 은사를 병으로 잃을뻔한 페스타는 그 태도에 고스란히 상처받는다. 

 

 "넌 내가 3년간 뭘 위해 달려 왔는지 잊은 거야?"

 

 "... ..."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가장 가까이서 날 지켜본 네가..."

 

 페스타는 클래식 시즌부터 개선문상까지 3년간, 죽어가던 은사님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린 거나 다름 없다. 그러니까... ... 아무리 자기의 달리기를 위한 얘기라 하더라도, 자기의 존재를 그렇게 무가치하게 여기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너를 위해서' 라는 명목 하에 어딘가로 금방 사라져버릴 듯이 구는 게 싫었다. 싫다고 할까, ... ... 큰 상처일 것이다, 사실. 소중한 사람이 죽을뻔한 자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봤으면서 저렇게 말한다는게.

 

 페스타는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바라면서 레이를 빤히 쳐다봤는데, 레이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한다.

 

 "하지만 페스타, 네가 날 살렸잖아. 네가 '살아 있어야' 나도 살아있을 수 있어."

 

 "... 무슨 의미야?"

 

 그렇게 묻는 페스타에게 레이 역시 유독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나만 물을게. 페스타는 말했잖아, 레이스를 하면서 살아있을 수 있게 됐다고. 은사님이 그 길로 인도해주고, 내가 있었기에... ... 위험한 길로 빠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그러면 달리지 못하게 된 너는 살아있을 수 있어?"

 

 이전부터 잔류하던 불안감을 레이는 처음으로 입에 담았다. 개선문상이 끝나고, 레이스에 출주하며 강적들과 겨루는 것도 1년이 지났고... 이런 시기즈음 되면 언젠가 있을 은퇴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가 되면 페스타는, 나는, 괜찮을까. 살아있을까. 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페스타는 직감했다. 여기서 확신을 담아 '살아있을 수 있다' 고 얘기해주지 않는 한, 바보같은 이 남자는 결코 자신의 태도를 굽히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 모르겠어."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 미래에 대해서 자신은 확답을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런 식으로 굴면 내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신나게 달릴 줄 알아?

... 네 시체 위에서 달리는 게, 퍽이나 짜릿하고 살아있겠냐고..."

 

 ... ... 좀 마음에 기스가 나서 평소보다 험하게 말을 하는 페스타에게, 레이는 미안한 듯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결코 의견을 물러주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예상대로. 

 

 "... ... ... 타인의 죽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슬픔도 흐려져 가. 다른 행복을 찾을 수도 있어. 하지만 한 번 망가진 다리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어."

 

 물론 재활이라던가 하는 방법은 있겠지만, 우마무스메 중에선 부상 때문에 은퇴한 애들도 사실 많았다. 적어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돌아와서 승리할 수 있었던 애들은 손에 꼽았고, 레이는 페스타로 하여금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심리도 있었을듯. 자신은 불가능했지만, 페스타라면 언젠가... 자기가 죽거나 사라져도 그것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자기가 본 나카야마 페스타는 그 모든 걸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결국엔 다 괜찮아질거라고.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그 우직한 시선에서... 페스타는 또 레이의 속내를 눈치채버린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진다. 페스타는 자기 마음에 강하게 기스가 나버린 걸 재차 실감한다. 이 고집쟁이... 라는 생각을 하며. 

 

 "알고 있어? 넌 진짜 고칠 방도도 없는 바보 멍청이에 고집쟁이야."

 

 라는 말과 함께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병실 문 앞에서 괜찮은 척 했다가, 겨우 소리 없이 기대선 페스타는 레이 말이 전부 다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은퇴한 이후, 드림 트로피에선 지금만큼이나 화끈한 내기를 할 수 있을까. 그것마저 끝나버린다면? 레이스 모임을 가진다고 해도, 점점 신체적 한계는 명징해질뿐일텐데... '

 

 '그 이전에 불의의 부상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그런 때의 내가, 다시 위험한 내기를 탐닉하러 뒷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살아있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페스타는 고민하고 있었다. 레이가 저렇게 된 데엔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이건 레이가 깨어나기 전 했던 생각의 연장선 같은 것이다. 자신은 항상 레이에게 스릴을 감수하고, 위험을 함께 뛰어넘자고 부추겼다. 레이도 그걸 바라는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그래서 '살아있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레이가 무모한 일에 뛰어들었을 때도 웃으면서 동참했고,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란 말에 "장담은 못 해." 라는 대답을 들려줬어도 뼈는 안 주워준다며 그런 태도를 방치했다. 

 

 하지만, 꼭 절벽 끝에 서서 아슬아슬히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것만이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까.

 

 나야 그렇게 태어났다지만, 저 녀석은? 사실 다른 방식으로도 살아있을 수 있는 걸... 내가 배수진으로 밀어버린 것은 아닌가. 처음부터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나? 단순히 아슬아슬한 레이스 정도만 도와주게끔 선을 그었어야 했나? 오늘은 운 좋게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지만...

 

 만일, 내가 너를 언젠가 죽음까지 몰고간다면 어떡하지.

 

 여기에 대해서 명확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페스타는 그대로 둔다면 우리에겐 언젠가 같은 일이 반복될 거란 걸 알았다. 스릴을 느낀다는 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계속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건, 언젠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면 우린 둘 중 누군가를 잃고 크게 상처받을 일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닥쳐올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살아있게' 해주는 건 레이스와 이런 일상 속의 스릴이다. 이걸 포기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죽어간다는 것과 마찬가지. 

 

 결국은 우리는 아슬아슬한 삶의 방식밖에는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할 '살아간다' 라는 감각이 우리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아서, 발버둥치고 용을 쓰며 목숨을 걸어야 겨우겨우 느낄 수 있을뿐이라. 흑이거나 백이거나, 천국이거나 지옥이거나, 벼랑 끝에서 스릴을 즐기거나 끝없는 지루함 속에서 시체처럼 살아가거나. 그런 선택지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스에미츠 레이와 나카야마 페스타도 그렇다. 하지만 네가 위험해지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면? 이제와서 너를 자꾸만 붙잡고 싶어진다면? 지금까지 ‘살아가던’ 방식을 서로가 방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이 삶의 방식은 지속될 수 있을까? 결국 서로 상실과 상처만 입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이야기를 해봐도, 서로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한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자기가 상관없다는 듯이 구는 레이를 보면서, 페스타는 네가 좋지만 가끔은 정말 미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둘의 사이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에서 애써 벗어나기 위해 둘은 수시로 입을 맞춘다. 아직 우리의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기 위해서. 레이가 페스타에게 먼저 입술을 누르면, 페스타가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둘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점점 이 관계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걸.

 

 페스타의 '네가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는 말도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었다. 자기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마무스메도 아닌 레이는 계속 위험해질테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같은 느낌.

 

 그러나 키스 따위는 어차피 일시적인 도피책에 불과하다. 이런 망설임이 달리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갈등이 페스타의 안에서 휘몰아치는데 레이스 성적이 좋게 나올리가 없으니까. 레이스도 결국 다리의 문제였고, 이렇게 달릴 수 있어도 네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데.' 라던가, 죄책감이나 무거운 마음이 복합적으로 발목을 붙들었다. 그래서... 타오르지 못했고 레이스 실적도 부진을 거듭한다. 삶의 실감을 느끼기엔 너무 무거운 상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런 페스타한테... 기자나 대중들도 이제 개선문상 우승 우마무스메도 한물 간 건가, 하고 쑥덕거린다. 평소라면 그 인식조차 도전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의 페스타는 그러기엔 너무 타오르지 않는 상태. 달리기에서 즐거움보다는 망설임과 답답함이 늘어나자, 조금이라도 살아있다는 실감을 위해 밖으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레이는 그런 페스타를 계속 신경쓰면서 괜찮냐고 묻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자기 때문인 걸 알고 속시원히 해결을 못할 것도 알아서 뻗었던 손을 거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페스타의 달리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그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크리스마스 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모두가 적절한 짝이 있다고. 어쩌면 페스타는 다른 트레이너를 만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려고 하고, 그런데도 완전히 멀어지지는 못해서, 그만큼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다.

 

 결국 일이 터진 것은 여름합숙 때였다. 예전처럼 실력 발휘를 못하는 페스타를 보며 기자들이 수군거리는 것과 여전히 불안한 레이와의 관계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페스타는 밤 중 숙소에서 빠져나와 밖을 방황한다. 딱히 영원히 도망칠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잠시만이라도 도망가서 시선이 없는 곳에 있고 싶어서. 그녀는 예전엔 트레이너와 함께 갔었던 어둡고 방치된 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밤 중 페스타가 없어져서 숙소에선 소란이 벌어진다. 레이는 자신이 찾아보겠다고 나서며 왠지 모르게 그녀가 갈 곳을 직감한다. 짜릿하고, 스릴 넘치고, 도망치기도 제격인 곳. 우리가 함께 갔던 산밖에 없었다. 트레이너 역시 망설임 없이 그 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예전에도 곰이 나타난 산이다. 밤 중 무엇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고, 그 불길한 예상은 적중했다.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늑대에 레이는 쫒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거리차가 좁혀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나타난 페스타가 소리 나는 핸드폰을 던지는 것으로 늑대를 유인하고 레이를 잡아서 도망친다.

 

 간신히 늑대들을 따돌리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페스타가 레이를 갑자기 엎어트리며 보기 드물게 감정이 격해진 목소리로 따진다. 왜 항상 그런 식이냐고. 자기 목숨 아까워할 줄 모르냐고.

 

 알고보니 그녀는 숲 속에 들어온 채로 자신을 찾는 트레이너를 쭉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참 감정적인 목소리로 흥분을 쏟아내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중얼거린다.

 

 “... 나는 항상 너를 위험하게만 만드네.”

 

 그리고, 레이가 또 자기 때문에 목숨이 위험했다고 생각하면서... 이젠 이전 (전의 여름합숙)과 같은 스릴과 짜릿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졌다는 걸 실감한다. 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느껴버렸기 때문에, 그걸 무시하기엔 이 마음이 너무 깊어졌기에, 같이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마냥 바보처럼 웃을 수 없게 됐다고. 만일 너와 내가 이런 일을 벌이다가 너에게 불의의 사고라도 벌어진다면, 나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페스타는 처절히 실감한다. 더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걸 못 견디겠다고. 이런 감정의 원인엔 지금까지의 일에 지친 탓도 있었다.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 같고, 서로를 상처 입히고 있고, 너는 내 마음에 답해주지 않고 도망치면서, 나는 그런 너를 점점 더 위험하게 만드니까... ..

 

 “나는 너랑 만난 게 최고의 행운이었지만, 너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나랑 만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

 

 결국 레이가 자신 때문에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는 무거운 마음과 불안함, 죄책감을 그대로 내뱉게 된다. 가장 살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자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게 됐다는 아이러니. 나캬아마 페스타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우리, 이제 그만할까. 이런 관계는 끝낼까.

 

  “그게... 무슨 말이야, 페스타.”

 

 차마 완전히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으니까. 그렇지만, 말하고 나서야 이 말이 관계의 책임 돌리기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걸 자각한 채 페스타는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정말로 헤어지고 싶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극도로 머리가 복잡해진 페스타는 레이한테 안전하게 하산하는 길을 알려준 채로 말한다. "먼저 가. ... 지금은 네 얼굴 보고 침착하게 얘기할 자신 없으니까." 그 말과 함께 자신은 머리를 식히고 가겠다며 다른 방향으로 등 돌려 도망친다. 

 

 등을 빙글 돌린 페스타를 보며 레이는 둔부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감각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실감한다. 우리는 서로를 상처주고 있었다는 것을.  왜 이렇게 된 거지? 라는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의 관계라면 영원히 이대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나에게도 거리를 두겠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는 페스타가 간 방향으로 쫓아가려다가 순간 주춤 발걸음을 멈춘다.

 

 왜인지는 자명했다. 레이스를 하면서도 점점 타오르지 못하는 페스타를 보고 있으면... 페스타를 '살릴' 수 있는 건 나라고조차 말하지 못해서. 유일하게 자신을 가지고 페스타 옆에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이유조차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그 불씨가 꺼져가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면, 페스타가 바라는대로 이대로 내기 연애를 끝내는 것이 맞지 않나. 거리를 두는 게... '옳은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건 싫었다. 정말로 끔찍하게, 너무나도 싫었다.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레이 또한 페스타를 향한 자기 마음이 너무 깊어져서 더는 막을 수도 없이 범람했고, 그 속에 휩쓸리며 나는 네 손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고 싶지 않아졌다는 걸 자각한다. 거리를 두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아무리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 하더라도... 할 수 없었다. 너를 사랑하니까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단 마음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 레이는 본능적으로 페스타가 간 곳을 향해 뛰어간다.

 

 이런 관계라면 영원할 줄 알았어. 연인이라는 관계성은 너무 연약해서, 별 것 아닌 이유로도 사람들은 늘 헤어지니까. 연락 빈도, 섬세함, 예의, 질투, 생활습관, 때론 돈이나 가족, 직업... 나는 그런 것들로 널 잃고 싶지 않았어.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대로라면 충분했어. 넘쳐흐르는 마음은 참으면 되니까. 지금 이 충동에 몸을 맡긴다면 언젠가 전부 산산조각난 잔해밖에 남지 않을테니까. ... 결코 깨지지 않을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알고 있어. 사실 전부 핑계라는 걸. 나는, 그냥... 두려운 내 마음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을 뿐이었어. 널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 네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확신을 다해 말할 수가 없어서, 너와 그 정도로 가까워지기엔 너무 초라한 사람이라 겁을 먹었을뿐이야... ...

 

 이상하게도, 산으로 들어간 페스타를 찾는데 너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건 예전의 흥분과는 달랐다. 이 산에 계속 있는 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어떤 직감. 그에 따른 불길함이 점점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미친듯이 불안해지는 감정 속에서, 레이는 이것이 자기가 페스타 대신 크게 다쳤을 때 페스타가 느꼈던 감정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리는데 불길함만이 온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구나. 자신이 페스타에게 줄 수 있는 건 온 몸을 내던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도 네가 전력으로 원한다고 말해온 것엔 응해주지 않았다. 결국, 나약하고 비겁한 독선이었을뿐이다.

 

 ... 사실은, 절대로 놓치고 싫어해서 이렇게 발버둥질 칠 정도로, 너를 사랑하고 있으면서.

 

  그러나, 페스타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남아있는 것은 어지럽고 급박하게 어딘가로 뛰어간 듯한 두 개의 발자국이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페스타도 페스타 나름대로 고민이 컸다. 역시 레이랑 헤어지고 싶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자기랑 있을수록 위험해지는 것도 맞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떤 내기를 걸어야 하는지... 드물게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녀는 가만히 깊은 산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전에 레이와 함께 보았던 그 바다. 다시 한 번이라도 그걸 보고 싶다, 그 생각에 한 번 와본 감각에 의존해 바다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건 트레이너도 들짐승도 아니었다. 예전, 레이를 칼로 찌른 뒤 도망친 질나쁜 불량배 우마무스메였다.

 

 그녀는 그 뒤로 자기는 완전히 경찰에 쫒기고 빨간 줄 그이는 신세가 돼서 회복불능이라고 원한이 가득한 채로 페스타에게 따진다. 페스타는 그런 말을 듣는대로 그건 네 책임이라고 헛웃음을 지으며 반박했으나, 상황이 영 좋지는 않았다. 상대는 명백한 살의를 품고 있고, 칼도 들려있고, 인간이라면 모르겠으나 같은 우마무스메다. 트레이너가 크게 다쳤을 때의 기억 역시 떠올랐다. 그 때 자신의 다리만 집요하게 노린 것도. 차라리 숲의 지대를 이용해 따돌리며 뒷통수를 치는 게 낫겠다고 여긴 페스타는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밤의 숲은 지독하게 깜깜하고, 페스타라고 그 넓은 산의 지리를 다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고 전력을 다해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필 악운이 겹쳐 페스타는 잘 눈에 띄지 않는 낭떠러지 부근까지 갔다가 발을 헛디뎌버린다.

 

  가까스로 손으로 절벽 위를 잡고 버티고 있었으나, 그 우마무스메가 점점 다가와 자신의 손을 떼어놓으려는... 그 때였다. 기습적으로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고, 페스타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방심하던 불량배가 기절하듯이 쓰러진 것은. 뒤에는 간신히 페스타를 쫒아온 흙투성이의 트레이너가 있었다.

 

 레이는 페스타의 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올리려 한다. 하지만 경사면이 가파른 절벽에서는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도리어 페스타를 잡은 그가 점점 기울어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힘을 주고 끌어올리려고 해도, 끌어올려지기는 커녕 간신히 절벽 끝면을 힘주어 붙잡고 페스타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리지 않도록 버티는 게 한계였다. 아니,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를 느낀 페스타는 아래를 보고 말한다. 

 

 "... ... 그냥 놔."

 

 "... 그게, 그게 무슨 말이야. 페스타."

 

 "포기하고 죽겠다는 건 아니야. 살 확률도 있잖아. 떨어지면서 운 좋게 붙잡을만한 가지를 발견한다던지, ... 혹시 알아? 우마무스메니까 기적적으로 부상에 그칠지."

 

 페스타는 그렇게 말했지만, 절벽 아래를 바라보면 붙잡을만한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무리 우마무스메라고 하더라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인 게 너무 선명했다.

 

 "말도 안돼. 이건 불리한 도박 정도가 아니잖아."

 

 -그냥 자살 행위잖아. 그런 말이 입 밖에서 나오려다가 목이 막혔다. 페스타가 입술을 피 날 정도로 질끈 씹으면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울 듯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레이를 향해 페스타는 소리친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어쩔건데? 둘이서 같이 떨어질까? 그래서 사이좋게 죽으면, 퍽이나 좋겠어?" 

 

 쏘아붙이듯한 목소리, 사실은 맞잡은 페스타의 손도 달달 떨리고 있었다. 본인도 이게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이고 허무하게 죽을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몸이 기울어져서 둘이 같이 떨어진다면...

 

 "내가... 내가 기어코 너를 죽이게 만들 셈이냐고...”

 

 레이의 마음을 살린 건 자신이었지만, 물리적인 생명을 절벽 끝까지 끌어들인 것도 자신이었다. 그가 숨쉬는 시체로 있는 것도 싫었지만, 만족한 채로 죽은 인간인 것도 싫었다.

 

 그리고 그런 페스타의 표정과 목소리, 떨리는 손... 모든 걸 본 레이는 알아차려 버린다.  내 목숨이 위험했을 때, 네가 내 발목을 지키겠답시고 나 자신을 걸었을 때 너도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상대가 위험에 처한다는 건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상처받고,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훨씬 싫은, 지옥에 곤두박질친 것 같은 감각이었구나. 너는 지금껏 이런 감정과 싸우고 있었구나.

 

 자신은 지금까지 서로 상처 입고 멀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페스타의 마음에 완전히 응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피해왔다.

그러나 지금와서야, 다소 고리타분하고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던 세간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도망치는 것도 선택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었다.

...결국 나는 선택의 결과로, 최악의 방법으로 너를 상처입히고 있었을 뿐이었다.

 

 ... ... 그러면?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아?

 

 혼란스러운 심정에 야속하게도, 팔에 힘은 점점 빠져갔다. 페스타는 급기야 자신이 스스로 손을 빼려고 했고, 그걸 다급하게 붙잡으면서 레이는 생각조차 못한 채로 본능적으로 말을 뱉었다.

 

 "죽지 않을 거야... 우리 둘 다 죽지 않아..."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다.

 

 ...자신은 진작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고. 같이 죽어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죽지 말자고, 살아있자고, 그런 말들을 했어야 했다고.

 

자기를 제대로 소중히 여겼어야 했다. 너를 이렇게 상처입혀서 놓치기 일보 직전이 되기 전에 그랬어야 했다.

 

 아마 페스타가 저렇게 놓으라고 말하는 것은 단 한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헤어지자고 말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쭉, 마음은 솔직하게 부딪혀 오던 페스타니까. 기다리겠다고까지 해준 너니까. 계속 참아가며 희망을 붙잡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하기엔 너무 미욱한 인간이라...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목숨을 소중히 하지 않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움직이지도 않아, 너와의 모든 걸 망쳐버렸다. 어쩌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버렸을지도 몰라. 폐허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

 

 

 ...

 ... ...

 ... ... ... .... ...... 폐허...밖에?

불공평하잖아. 이게 마지막이라니.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너를 이렇게 놓으려고, 지금까지 발버둥친 게 아니야.

 

어느 쪽 선택지도 낭떠러지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 단 한 번쯤은, 필사적으로 진심을 부딪히고 싶어.

최후의 최후까지 발버둥을 치는 게 꼴사나운 최악의 인간이라면, 그런 꼴사나운 최악의 모습이라도 보일 거야. 

 

 "죽지말고, 살아가자. 너도, 나도. 어떻게든.

벌써부터 포기하지 말아줘. 걸거라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 걸어줘.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발견해서 내가 너를 끌어올릴 수 있다에 걸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레이의 얼굴은 이질적일 정도로 필사적으로 떨리고 있었고,

 

 "... ... "

 

 페스타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에 레이가 하던 같이 죽어도 좋다든가 네가 없으면 의미가 없단 말들이랑은 꽤 달랐으니까.

 

 "우리가 살아갈 날들은 아직 많이 남았잖아. 우린... 더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거잖아."

 

 하는 말에 확신은 없었고,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확신 어리게 말을 하지 않으면, 지독히 자신이 없다는 걸 들켜버릴 것 같아서.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내뱉으며 그녀의 손을,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의 동앗줄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힘으로 부여잡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아주 간신히, 붙잡아내면서.

 

 "...레이스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스릴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런 걸 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미래는 모르는 거잖아...!

 

 네가, 내가, 서로가 위험해지는 게 불안하다면, 그만큼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건 그만두자. 대신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자.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 언젠가 레이스가 끝나고 나서도, 위험한 스릴에 목숨을 맡기지 않아도, 계속, 계속...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

 

 ... 분명 있을 거야. 분명히... ... 왜냐면... 그게 네가 말했던 '희망' 이잖아."

 

 평소의 태연한 모습과 다르게 절박하고, 필사적이면서, 손이 파들파들 떨리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을 준 모습이 페스타의 눈에 그대로 비춰왔다.

 

 "레이, 너... ... 읏."

 

 순간 땀이 찬 손이 미끄러질 뻔했지만, 페스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레이의 손을 강하게 쥔다. 그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조금 다르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페스타도 무언가 깨달은 듯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그는 그 이상으로... 같이 떨어질 생각도 없어보였다. 눈 앞의 저 사람이 바보의 눈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단, 1% 가능성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진심을 다해 믿고 있는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 내 말을 쉽게 믿지 못할 거, 알고 있어. 지금까지 계속 널 상처입히기만 했으니까. 그래도 부탁이야. 제발 믿어줘."

 

 점점 기울어져가는 몸. 우마무스메와는 달리 연약하기 그지 없는 인간의 몸은 이런 행동만으로도 금방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한계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끝에 결코 순응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추한 발버둥이 아니라 기적을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니까. 그리고-

 

 "...나... 이제야 그만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는, 너랑 같이 행복해지고 싶어."

 

 그런 말 끝에 뱉어야 할 결론은 자명했다. 마지막 한 발자국의 용기, 그게 없어 줄곧 미루고 미뤄왔던 말.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솔직한 진심. ..이걸 내뱉으면 결코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겠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헤어질 위기가 또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 줄곧 하고 싶었으나 참아온 말이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참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 페스타."

 

떨리는 입술 사이로도, 결코 잘못 듣지 않게 하겠다는듯 똑똑히 들리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몰아붙여져서야 겨우 내뱉을 수 있는 나야. 어쩌면 이것조차, 이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상황이 등 떠밀었으니 가능한 걸지도 몰라. ...칭찬 받을만한 용기가 아니야.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잔뜩 망가진 뒤에야 어떻게든 매달리며 애써 수습할 방법을 찾는 것에 불과할지도 몰라.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 나야. 줄곧 도망치는 것밖에 하지 못했어. 멋대로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가장 가까운 진심도 전부 외면해버렸어. 그래도... 전부 걸게. 내 전부를 확실하게, 너에게 걸게. 그리고, 이번엔 내가 말할게. 페스타.

 

 나에게 걸어. 나와 함께 살아줘, 제발."

 

 그 말에, 페스타는 조금 멍하니 레이를 바라보다가... 결국 설핏한 웃음을 흐트렸다.

 

 "아주 오래 기다렸어... ... 그 말을.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정말, 바보 자식..."

 

 스릴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언젠가 레이스의 세계에서 은퇴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 그런 거 자신은 레이스와 스릴을 탐닉하느라 바빠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이상하게, 이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가능할 것 같아서.

 

 "하지만 아주 끝까지 늦은 건 아니네. ... 그 '희망'이라는 녀석한테, 나도 걸어보고 싶어졌으니까."

 

 그 간곡한 선언은 결국 페스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둘이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 물리적인 수명도 살아있다는 감각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헛된 희망일지라도 둘 모두 잡기 위해 발버둥치고 싶다. 너와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고 싶다. 일순의 반짝임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게 됐다. 너와... ... 오래도록 행복한 미래를 손에 넣고 싶다. 

 

 "아무리 불리한 내기라고 하더라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따위 시시해. ... 그렇지? 그러니까, 나한테 이렇게까지 희망을 심어주는 너는... ..."

 

 페스타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전 자신이 한 말을 정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절대 놓지마, 그 손.”

 

 이 앞에 기다리는 것이 천국일지, 지옥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는 편이 우리에게 더 어울리니까.

 

  그 말과 함께 페스타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또 다른 도박을 감행한다. 몸을 시계추처럼 한순간 뒤로 물렸다가, 바로 다음 순간 강하게 앞으로 당기며 앞서 있던 암벽 신발로 차냈다. 엄청난 충격과 반동이 안 그래도 힘이 떨어진 레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지만, 레이 역시 어금니를 악 물고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반동을 버텨낸다. 그 여파로 암벽에 작은 홈이 생겼고, 페스타는 그걸 발로 디딘 후에 크게 도약했다. 레이가 버텨내거나 페스타가 충분히 도약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두 사람 모두 한 순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질 도박. 그러나 ‘함께 살아가고 싶다’ 라고 결심한 둘은 결국 도박에서 승리한다.

 

 절벽 위로 올라오는데 성공한 둘은 일단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그대로 털썩 드러누워버린다. 겨울의 산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운데다, 바람은 매섭고 어느새 눈까지 불고 있었지만, 둘에게는 이 모든 게 상쾌하고 후련했다. 그 때의 그 여름 합숙처럼. 하지만 그 때와는 전부 달라졌다. 쌓아온 기억도, 관계도, 맹세한 미래도. 아마 앞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 그래도... ...

 

 페스타는 드러누운 채 밤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레이. 너는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해? ... ... 우리가 계속, 오랫동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뻔한 결말의 끝에 도달하는 것."

 

 "글쎄... ... 마냥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겠지만,"

 

 레이는 가만히 미소 지으면서 페스타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에 걸고 싶어.

 너는 어디에 걸래, 페스타?"

 

 페스타는 숨을 팍 터트리듯 웃었다. 자신이 무얼 선택했는지는, 지금 옆에 누워있는 자기의 존재를 보면 확실할텐데. 그래도 알고서 하는 질문이 불쾌하진 않았다. 대신 답을 돌려준다. 그 때,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트레이닝을 했을 때 한 말로.

 

 "이거 아냐? 둘 다 같은 쪽에 배팅해버리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된다고."

 

 그 말이 끝나고 둘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마치 그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한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맞닿은 입술만은 생생할 정도로 뜨거웠다. 피부를 통해 닿는 온도가 서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상대가 전신에 피가 돌며 심장이 뛰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나 또한 '살아있다'고. 그 감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느끼며 확인받고 싶어서 두 사람은 입술을 겹치고 뜨거운 숨을 나누었다.

 

 그 날의 키스에선 생(生)의 맛이 났다. 불에 데일 정도로 뜨겁고 생생하며,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맥동치고 있는 생의 맛이었다.

 

 그렇게 눈이 쏟아지는 숲 속에서, 두 사람은 진정으로 맺어진다. 더는 반짝이는 '한순간' 에서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서로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염원을 품은 채로. 

 

 굳이 목숨을 걸고 아슬아슬한 스릴이 넘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두 도박사는 그것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좀 더, 좀 더 생을 탐한다. 지금 이상으로 더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을 찾으러 어디까지라도 달려나간다. 

 

 다만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향한 책임의 무게를 손에 얹는다. 내가 다치면 네가 슬퍼할 것이고, 네가 다치면 내가 슬퍼한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인식은 이전처럼 두 사람이 함부로 스릴에 목숨을 던지진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살아있다는 걸 방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제약까지 포함해, 서로와 함께 나란히 걷는 이 삶이 그들을 더 살아가게 만든다.

 


 

 

 (*참고로 경찰에 신고해서 이후 불량배 우마무스메는 잡혔습니다)